사이에서, 그림책 읽기

“그림책이 다 무슨 소용이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이렇게 팍팍하기만 한데.”
저처럼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한숨 푹 쉬면서 힘이 쭉 빠진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펼쳐 보세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과 그림책 ‘사이’를 오가면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여기 있습니다. 이 책의 작가처럼 한 손에 그림책을 들고 또 한 손으로 신문을 넘기며 질문하는 어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현아 교사,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대표

김장성 지음|276쪽|140*200mm|책값 17000원

책 소개 글(작가 서문) – 괴물과 사람 사이에서,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읽은 그림책 이야기

그림책이 던지는 질문

한 아이가 맑게 웃으며 친구에게 말한다. “우리 집 진짜 좋아!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친구가 웃지 않으며 아이에게 대답한다. “너네 집 3단지잖아. 거긴 임대아파트야. 임대가 뭐가 좋아! 우린 학원 가야 해.” 그러고는 다른 아이와 총총 가 버린다. 맑게 웃던 아이의 얼굴이 굳어 버렸다.
르포 기사의 한 대목 같은 이 풍경은 그림책 《우리 집은》(조원희, 2021)의 한 장면이다. 아이는 ‘식탁과 욕조가 있고 거실에 바람이 통하는’ 집으로 이사와 한껏 행복해하던 터. 예전 집에서와는 달리 네 식구가 다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아빠랑 동생이랑 함께 목욕을 하고, 더운 날 시원한 잠을 잘 수 있는 게 그리도 좋았다. 그래서 그 ‘좋은 우리 집’에 친구를 초대하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에게 그 집은 ‘자가’도 ‘큰 평수’도 ‘민영’도 아닌 ‘임대’일 뿐이었다. 그래서 싸늘한 얼굴로 아이의 초대를 일축해 버렸다. 아이는 웃음을 잃고, 친구는 남의 웃음을 빼앗은 괴물이 되어 버렸다. 르포였다면, 상처 입은 ‘임대’ 아이는 오래 아팠을 테고 아이의 엄마는 서글픈 처지를 한탄하며 오래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림책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여기 우리 집 아니야? 임대에 살면 부끄러운 거야?”라 묻고, 엄마는 아이를 꼭 안아 주며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살고 있으면 우리 집이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부끄러운 거야.” 그러자 웃음을 되찾은 아이가 다시 말한다. “사람들은 몰라. 우리 집이 얼마나 좋은지. 나는 알아. 우리는 알아.” 그 ‘좋은 우리 집’으로, 하루 일을 마친 아이의 아빠가 치킨 봉지를 들고 씩씩하게 걸어온다.
집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 집’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집은 진짜 ‘집’인가?… 사람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전복된 가치를 기준으로 타자를 멸시하고 있지 않은가? 누가 아이들을 남의 웃음을 빼앗는 괴물로 만들고 있는가?… 이 짧은 그림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림책 《우리 집은》

사이에서 그림책 읽기

그림책은 ‘사이’의 예술이다. 글과 그림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 관념과 표현 사이, 내용과 형식 사이, 어른과 아이 사이, 상상과 현실 사이…. 그림책은 그 사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림책을 읽는 일은 사이를 읽는 일이다. 사이를 직관하여 의미에 닿는 일이며, 사이를 통찰하여 의미를 분석하는 일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의 표피보다는 본질에 주목하게 되며, 답을 얻기보다는 질문을 품게 된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
“사람 되는 거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영화 <생활의 발견>(홍상수, 2002)에서 몇 차례 반복되는 이 대사는 우리가 사람의 삶과 괴물의 삶 사이에 살고 있으며, 사람답게 살기가 괴물처럼 살기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실제로 신문을 펼치거나 뉴스를 틀어 보면 그 사실은 바로 실감이 된다. 사람이 괴물 되기, 사람을 낳아 괴물로 키우기가 얼마나 쉬운 세상인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로버트 풀검, 2004)는 31개 언어로 번역되어 1,700만 부가 팔린 책이다.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이 책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뜻일 테다. 유치원에서는 사람답게 사는 데에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배운다. 그림책이 말하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 괴물이 되지 않기, 그리고 괴물로 키우지 않기는 어렵지만 복잡한 일은 아니다. 유치원만 제대로 마쳐도, 그림책만 잘 읽어도 가능하다. 그러니 함께 그림책을 읽어 보자, 사람과 괴물 사이에서. 이 책은 글쓴이가 그렇게 그림책을 읽은 기록이다.

책 속에서 – “중요한 건 그저, ‘사람다움’이었다.”

“시선을 일컫는 말들의 대부분이 차갑고 일방적인 뜻을 담고 있는 까닭은 무얼까? 무시, 멸시, 천시, 경시, 감시, 좌시, 질시, 냉시, 홀시, 도외시, 백안시, 적대시, 등한시, 사갈시…. 어떤 시선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22쪽, 《위를 봐요!》

“인간사, 과거로 보내야 할 것과 현재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런데 보내야 할 것이 집요하게 머물고, 지켜야 할 것이 허망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럴 때 삶은 시제가 틀어진다. 어떤 삶은 시제일치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논리적인 종용일까?” 30쪽, 《고양이 나무》

“로드킬은 속도에 적응 못한 생명들에 가해지는 문명의 폭력이다. 폭력에 희생된 죽음은 처참하다. 처참한 주검은 처참한 상상을 부른다. 죽음의 상상이 처참한데 삶이 명랑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로드킬은 인간의 문제다. 그것을 막는 것도, 뒤처리를 하는 것도.” 45쪽, 《잘 가, 안녕!》

“그랬다. 그를 끌어내리고 아득한 바다 속의 그 배를 끝끝내 물 밖으로 불러낸 것은, 멀쩡히 눈 뜬 채 차디찬 물속으로 떠나보낸, 그 배의 아이들을 잊는 것이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는, 수많은 이름들의 예의와 도리였다.” 49쪽, 《너였구나》

“실망을 기대로, 상상으로, 표현으로, 마침내는 협력과 나눔과 창의 가득한 놀이로 이어지게 한 사람은 누구인가? 사려 깊은 어른이 아이들을 바꾼다. 어른들의 언행이 이처럼 무겁다.” 108쪽 《아주아주 큰 고구마》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악어랑 하마가 싸우면? 슈퍼맨과 배트맨은? …아들만 둘을 키우면서, 되풀이되는 우문에 현답을 구해 보았다. “둘 다 지느니라.” 이긴 놈이라 해도 피투성이일 테니까.“ 117쪽 《콤비》

“이 나라 그림책 작가의 할머니와 저 나라 인류학자의 어머니, 두 노년의 이야기는 우리가 평소 어떻게 살아야 잘 늙어 구박받지 않으며 행복하게 죽어가게 될지를 넌지시 일러 준다. ‘잘 늙어 죽을 준비’, 사실 그것은 ‘젊어 잘 살아가기’이기도 한 것이다.” 137쪽 《할머니네 집》

“링크 위의 경연은 삶의 일부일 뿐이며 인생에는 고난도 점프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진실을 발견해 준다면 고맙기 그지없겠다.” 149쪽 《선》

“속을 알 리 없는 자식은 부모 속을 썩이고, 속상한 부모는 애먼 소리를 한다. “너하고 똑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 봐라.” 그러나 헛된 말이다. 미래는 실감할 수 없는 것이니. 민망한 말이기도 하다. 과거엔 나도 야속한 자식이었으니.“ 157쪽 《나의 아버지》

“어린 시절을 벗어난 뒤에도 우리는 수시로 우리 앞에 나타날 괴물을 떠올리며 두려워한다. 입시, 취업, 질병, 노화, 노후의 삶…. 그리고 죽음이라는 괴물들. 하지만 우리가 이리 애면글면 살아가는데 괴물이라고 쉬이 올 리 있을까?” 157쪽 《괴물이 오면》

“남자다움이란 무얼까? ‘여성’ 작가 조원희가 만든 이 멋진 그림책을 보니 알겠다. 그런데, 그건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의 덕목이지 않은가?… 중요한 건 그저, ‘사람다움’이었다.” 218쪽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

“이성이든 동성이든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여 가정을 이루고 싶은 이들을 센트럴파크의 사육사처럼 돕지는 못할망정, 저주할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 사랑이 진실하기를 기원할 수 있을 뿐.” 222쪽 《사랑해, 너무나 너무나》

기다리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자들은, 기다려도 얻기가 어려운 이들에게 종용한다. “기다려라. 가만히 있어라.” 하지만 기다림은 기다리는 자와 기다리게 하는 자 사이가 대칭이거나, 우위에 있는 자가 열세에 있는 자를 기다려 줄 때나 미덕이 된다. 230쪽 《검은 강아지》

누가 시작했든 누가 멈췄든, 전쟁으로 죽고 부서지고 헤어지게 되는 쪽은 언제나 우리다. ‘종전’은 더 이상 그런 일이 없게 하는 일이다. 우리, 순득이들의 종전을 훼방 놓지 말라. 끝내지 않아도 괜찮은 전쟁은 없다. 260쪽 《숨바꼭질》

사이에서, 그림책 읽기
김장성 지음 I 값 17000원


김장성 (32년차 그림책 편집자)
1991년부터 그림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림책 편집자, 작가, 발행인으로 일하면서, 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그림책창작론을 강의하고 있다. <민들레는 민들레><수박이 먹고 싶으면><겨울, 나무> 등의 그림책과 <가슴 뭉클한 옛날이야기> 등의 옛이야기책, 그리고 역사책 <박물관에서 만나는 강원도 이야기>를 썼다. 2015년에 <민들레는 민들레>로 볼로냐 라가치상(논픽션 스페셜멘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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