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사냥꾼

Tooth Hunters

 

한 아이가 꿈을 꾼 후에

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조용한 초원이었지요. 스스슥, 구둣발이 풀을 밟는 소리와 함께 사냥꾼들이 나타났습니다.
초원을 살피는 망원경 속에 사냥감이 들어옵니다. 벌거벗은 회색 피부의 커다란 아이.
사냥꾼들은 일제히 달려가, 탕탕! 수십 발 총으로 사냥감을 쓰러뜨립니다.
가물가물 의식을 잃어 가는 사냥감의 눈에 사냥꾼들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사냥꾼들은 코끼리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사냥꾼들이 갖가지 연장을 동원해 아이의 엄니를 뽑아냅니다.
거대한 엄니가 밧줄에 묶여 옮겨진 곳은 이빨 시장. 그렇게 약탈한 엄니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그곳에서 엄니들은 등급과 가격이 매겨지고 상인들에게 팔려 나갑니다.
상인들은 엄니를 쪼고 다듬어 조각품을 만들고, 담배 파이프와 지팡이, 촛대와 같은 갖가지 장식품을 만듭니다.
도시의 화려한 상점에 진열된 장식품들은 세련된 신사 숙녀들에게 다시 팔려 나갑니다.
체크무늬 코트를 입은 중후한 신사가 파이프를 하나 샀습니다.
그가 만족스레 피워 문 담배 연기는 자욱하게 퍼져 가고, 연기 속에서 아이는 꿈이 깹니다.
이상한 꿈, 이상하고 무서운 꿈. 아이는 너무나 무서워 꿈을 깬 뒤에도 눈을 뜨지 못합니다.
그때 어른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깨에 커다란 코끼리 엄니-상아를 하나씩 둘러멘 사냥꾼들의 행렬.
그 속에서 아이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해 줘야겠어. 이상하고 무서운 이빨 사냥꾼 이야기를…….’
아이가 돌이켜보는 꿈 속 장면 저편으로 총을 둘러멘 이빨 사냥꾼 하나가 멀어져 갑니다.
초원에서, 부모를 잃은 아기 코끼리 한 마리도 쓸쓸히 멀어져 갑니다.
이상하고 무서웠지만, 아이는 그저 꿈을 꾼 것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말 꿈.
그러나 아이는 그 꿈이 잊히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무서운 꿈과 지독한 현실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사무국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동안 12만여 마리 코끼리가 상아를 노리는 밀렵꾼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 하루에 85마리 꼴.
그렇게 17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이빨 사냥의 현장을 영국 BBC의 아프리카 특파원 나타샤 브리드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코끼리 ‘마운틴 불’은 등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모로 누워 있었다. 덫줄을 밟자 머리 위에서 떨어진 창날이 척추에 내리꽂힌 모양이었다. 죽은 코끼리의 얼굴에서 엄니가 사라져 있었다. 마운틴 불이 쓰러지자 근처에 숨어 기다리던 밀렵꾼이 달려 나와 아름다운 우윳빛 엄니를 칼로 도려낸 것이 틀림없었다. 코끼리는 마지막 숨이나마 고이 쉴 수 있었을까?”(BBC 뉴스매거진의 2014년 6월 1일자 기사 <The elephants’ graveyard: Protecting Kenya’s wildlife> 중에서)

이야기 속에서 아이가 꾼 악몽이 코끼리들에겐 고스란히 지독한 현실인 것입니다.
나의 악몽과 너의 현실 사이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너의 고통을 잠시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곧 너가 될 수 있으며, 악몽은 곧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꿈과 현실, 그리고 나와 너의 사이

이야기는, 예술은, 그 사이를 이어 줍니다. 아니, 이야기와 예술은 그 사이를 이어 주어야 합니다.
그 ‘꿈’이 길몽이든 악몽이든, 그 ‘너’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럴 때 우리는 위로받고 각성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야기와 예술은 질문을 던집니다.
‘아이는 왜 그런 꿈을 꾼 것일까?’ ‘어째서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해 줘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어른들은 왜 상아 사냥에 나선 것일까?’ ‘먹거나 입거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코끼리 이빨이 꼭 필요한 걸까?’ …….
이 그림책이 무서운 꿈을 꾸고 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던지는 질문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놓게 될까요?
나타샤 브리드는 위의 같은 기사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한 무리의 코끼리 가족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본 적이 있다. 그들은, 너무 약해서 서 있을 수도 무리를 따라갈 수도 없는 새끼를 두고 떠나야만 했는데, 얼마 뒤 그들이 돌아왔을 때 새끼 코끼리는 목숨이 끊긴 뒤였다. 코끼리들은 죽은 새끼를 빙 둘러싼 채 창백한 회색 몸뚱이를 섬세한 코로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따뜻함과 슬픔이 가득한 그 모습은 내가 경험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이것은 단지 코끼리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이빨 사냥꾼》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이빨 사냥꾼

조원희 글 그림 | 13000원


작가 소개 : 조원희
홍익대학교에서 멀티미디어디자인을 전공하고 HILLS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자연과 동물,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감정들, 그밖에 작고 소중한 것에 관해 그림으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자기 내면 깊은 곳의 감정과 바깥 세계가 부딪치며 뿜어내는 기운을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형태와 독특한 색채로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중요한 문제》, 《얼음소년》, 《혼자 가야 해》,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가 있습니다. 《이빨사냥꾼》은 코끼리의 시각으로 바라본 상아 밀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러나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에 담았습니다. 이 책으로 2017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스페셜 멘션>을 수상하였고, 2013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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