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네 집




19년 전,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지팡이를 짚고 왼쪽 다리를 살짝 끌면서…

이 그림책은 작가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지금 작가의 나이 스물 아홉이니, 할머니가 오신 것은 열 살 무렵. 다리를 절며 지팡이를 짚고 오신 할머니, 오자마자 평생 쪽 지어 온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파마를 하신 할머니, 스스로를 돌볼 수 없어 자식의 집에 몸을 맡기러 오신 할머니는 어린 손녀의 눈에 꽤 낯설었을 겁니다. 이제 막 생명의 기운이 차오르는 아이에게 치매에 걸린 노인의 모습이 익숙할 리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부대끼다 보면 친숙해지는 법. 성장기 내내 함께해 오는 동안, 작가에게 할머니는 친근한 말벗이 되고, 노년의 삶을 성찰하는 모델이 되고, 사랑과 연민으로 가슴이 아릿해지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윽고 작가는 자신의 첫 작품 속으로 할머니를 초대했지요.


“나 오늘은 집에 간다아! 이따가 나 기다리지 마.”

복지관에 가시는 금요일마다 이렇게 말하는 할머니. 떠나온 지 열아홉 해가 지나 이제는 남의 집이 되었는데도, 할머니는 여전히 전에 살던 ‘효자동 집’에 살고 계십니다. 익숙한 것을 안전하다 여기는 치매환자의 심리기제일까요, 좋았던 시절 속에 머물고 싶은 소박한 욕망일까요.

어떻든 작가가 보기에 그곳은 할머니가 ‘날마다 쓸고 닦아 먼지 한 톨 없는 곳’이요, ‘손수 심은 나무들과 손수 담근 장 항아리가 나란히 서 있는 곳’이며, 할머니가 기억 속에서 여전히 대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할머니가 돌아갈 곳 – ‘할머니네 집’입니다.

그처럼 여기에 계시면서도 저기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작가는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할머니, 효자동 집 어땠는지 기억나요?” “효자동 집? 마당에, 주목나무랑 대추나무!” “마당에?” “있었어, 거기. 들어가는 대문 있는 데에 울타리.” “그리고 또?” “아이, 가서 사진 찍어 와. 우리 집, 집 그리기 싫어.” “땅도 파고?” “응, 내가 땅도 파고 장도 담고 장독 묻고 그랬지.”…

미국의 인류학자 자넬 테일러는 치매 어머니를 돌보면서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 썼습니다. ‘대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의사소통’이 아니라 서로 말을 주고받는 제스처… 누군가를 하나의 인격, 혹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인지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주고받는 제스처들에 대해 내가 기울이는 관심, 무의미해 보이는 그 사람의 몸짓들이 의미를 갖게 하는 관계와 돌봄의 제스처‘(김희경의 칼럼 <아냐, 난 사는 게 좋거든>에서 재인용) 이 책의 작가 또한 치매 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같은 깨달음을 얻은 걸까요?


할머니가 계시지 않은 우리 집을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할머니라는 한 ‘인격’과 더불어 성장한 작가는 이제 죽음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할머니는 죽음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을 테지요. 그래서 작가는 ‘가끔 주무시는 할머니를 가만히 보며 할머니의 코 밑에 손을 대 보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팍을 확인’하곤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는 날들이 점점 늘어 갑니다.


머지않아 보이는 이별 앞에서 작가는 생각합니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은 그때도 아무렇지 않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을까? 아마도 한동안 할머니 방 문은 닫혀 있지 않을까? 떠나간 사람은 모르는, 남아 있는 사람의 시간은 어떨까?…’

그리고 ‘남은 사람의 시간’을 채워 줄 할머니의 흔적들을 하나씩 떠올려 봅니다. ‘날마다 들고 다니던 빨간 가방과 가짜 밍크코트, 늘 두르고 계시던 머플러들, 시장놀이에서 산 500원짜리 귀여운 무지개 털모자, 보라색 가죽 장갑, 보실보실한 양말, 칠이 다 벗겨진 나무 지팡이, 꽃무늬 내복, 어디서 난지 모르는 보석반지들… 조용조용 살금살금, 어떤 때는 총총총 걷던 발소리와, 박자를 맞추던 지팡이 소리, 집안에 짜랑짜랑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 “지은 양,” 하고 부르던 목소리…’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할머니를 대신하게 되지는 않을 듯싶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다시 묻습니다. ‘그땐 거기에 가면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효자동 569-13, 연분홍 앵두꽃이 핀 할머니네 집.’ 그곳이 할머니가 평생을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으며 돌아가신 뒤에도 가 계실 진짜 ‘할머니네 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할머니네 집’은…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결국은 죽습니다. 그러므로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과 같은 뜻이며,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대개 뚝 끊어진 길처럼 오지 않습니다. 서서히 생명의 기운을 잃어가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지요. 그것을 우리는 ‘노화’라 부릅니다.


기력이 떨어지고 총기가 사라져가는, 그리하여 마침내는 앞가림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과정… 우리가 세상을 홀로 사는 존재들이라면, 노화는 얼마나 비참한 걸까요? 하지만 사람은 홀로 살지 않습니다. 누군가 곁에서 지켜보고 돌봐주기 마련이며, 그래야만 ‘인간다운 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책은 작가인 손녀가 지켜보는 할머니의 ‘노화’ 이야기입니다. 머지않아 죽음으로 마무리될, 마지막 단계의 노화… 그러므로 이 그림책은 슬픕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슬프기만 하지는 않은 까닭은, 할머니의 노화를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이 참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질서를 잃어버린 할머니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면서, 무의미해 보이는 할머니의 몸짓에 관심을 기울이며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그처럼 따뜻한 시선이 있어, 여기 ‘우리 집’에 있으면서도 저기 당신의 집에 살고 있는 ‘치매 할머니’가 ‘하나의 인격’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책을 덮으며 생각해 봅니다. 무의미해 보이는 몸짓을 하나의 인격으로 세워 줄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삶이, 어찌 ‘치매 노인’뿐일까요. 그러니 어쩌면 ‘할머니네 집’은, 갖가지 이유로 고통 받고 무시당하는 모든 ‘약자들의 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할머니네 집
지은 지음 | 값 13000원


작가소개

지은
“어느새 그림이 나의 말이 되었습니다. 매일 내뱉지만 삼킬 때가 더 많습니다.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나의 그림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생엔 나무로 태어나 지금보다 더 맘껏 흔들리고 싶습니다.”
이정하
작가 지은의 외할머니. 늘 먼 곳을 보고 계시며 노래 부르는 것과 양념 통닭, 거울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리와 꽃, 효자동 집을 잘 그립니다. 책 속 효자동 집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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