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들지 않는 것들은 힘이 없는가? <참파노와 곰>

야노쉬 글, 그림 / 전희경 옮김 /시공주니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는 속담이 있다.
이 책 속의 참파노가 속담 속의 ‘왕 서방’이다.
참파노는 붉은 트럭을 타고 다니며 곰을 부려 돈을 번다.
어느 날 참파노가 우리 마을에 왔다.
“신사숙녀 여러분, 곰이 재주를 부리고, 춤추는 모습을 구경하십시오.
이 곰은 무엇이든 내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나는 힘센 참파노입니다.”

참파노는 곰의 한 손을 밧줄로 묶어 끌고 다니며 채찍을 휘둘러 곰을 다스린다.
곰의 머리를 꾹 눌러 절을 시키고, 채찍을 던진 뒤 물어오게 하고, 물구나무를 서게 하고,
공중제비를 넘게 하고, 큰 통을 굴리게 한다.
북을 치며 풀밭을 행진하게 하고, 공중에 매어 놓은 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게 하고,
클라리넷 소리에 맞춰 춤도 추게 한다. 곰은 저항하지 않고, 우리는 생각한다.
‘곰이 꼼짝 못하는 걸 보니, 참파노는 정말 힘이 센가 봐.’

참파노는 곰의 머리를 장화발로 짓밟아 다시 한 번 억지 절을 시키며 소리친다.
“자, 보십시오! 무엇이든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듭 생각한다.
‘참파노는 정말 힘이 센가 봐. 곰이 꼼짝도 못 하잖아.’

그때 재미난 일이 벌어진다. 파리 한 마리가 곰에게 날아와 윙윙거린 것.
곰이 파리를 쫓으려 앞발을 들어 올리자 참파노가 밧줄을 당기며 소리친다.
“안 돼!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움직이지 말라니까! 내 말 안 들려!”
하지만 곰은 자꾸만 움직이고 마침내 파리를 향해 앞발을 휘두른다.
그러자 밧줄이 홱 당겨지더니, 뚱뚱한 참파노가 공중으로 날려 올라간다.
파리가 주위를 빙빙 돌자 곰도 빙빙 돌고, 참파노도 공중에서 빙빙 돈다.
우리는 생각한다. ‘참파노는 밧줄을 풀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빗나간다.
밧줄은 끊어지고, 참파노는 더 높이 날아가 버린다. 멀리멀리 사라진다.
파리를 쫓아다니던 곰도 멀리멀리 숲속으로 사라진다. 참파노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자주 우리 마을 위를 날아 지나간다. 위성처럼 영원한 궤도비행을 하며.

낯선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들러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상한 남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는 참파노 얘기를 해 준다.
“참파노는 대들지 않는 것들은 다 힘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참파노는 자기가 곰을 이길 수 있고, 붉은 트럭을 타고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서커스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30여 년 전, 멀고도 먼 독일의 작가가 제 나라 옛이야기를 다시 쓰고 그려 만든
이 그림책에 지금 여기의 풍경이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환영일까?
참파노의 밧줄과 채찍과 장화발이,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에 동참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수백만 원의 벌금 을 때리고,
역사 독점에 항의하는 지식인들에게 ‘종북’의 딱지를 들이밀어 협박하는
권력의 은유로 느껴지는 것이 나만의 착각일까?

나는 참파노의 파국이 지금 여기에서 재연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숱한 곰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성장과 발전, 민족과 민주의 역사를 통째로 갈취하려 드는 왕 서방들이 당장 밧줄과 채찍과 장화발을 거두고 곰들에게 머리를 숙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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