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의 본질은 무엇인가? <아저씨 우산>

한 아저씨가 있다. 까만 중산모를 쓰고 까만 코트를 입고 까만 구두를 신은.
무엇보다, 까맣게 빛나는 멋진 우산을 지닌 아저씨. 아저씨는 늘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결코 그 우산을 쓰는 일은 없다. 우산이 젖을까봐서다.

비가 조금 내리면 그냥 맞고 걷는다. 빗발이 굵어지면 처마 밑에 들어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서둘러야 할 때는 우산을 끌어안고 뛴다. 비가 그치지 않으면, “잠깐 실례 좀….”
남의 우산 속으로 들어간다. 아침부터 비가 오면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창밖으로 누군가의 우산이 바람에 훌렁 뒤집어지는 꼴을 내다보며,
“아아 다행이다. 하마터면 내 소중한 우산이 망가질 뻔했어.” 하고 마음을 놓는다. …… 집착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공원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작은 아이가 비를 피해 나무 아래로 뛰어든다.
아이는 아저씨의 우산을 보고 도움을 청한다. “아저씨, 저기 가실 거면 저 좀 씌워 주세요.”
하지만 아저씨는 못 들은 척 다른 곳을 쳐다본다. …… 집착이 인정을 저버린다.

그때 다른 아이가 다가와 말한다. “어머, 너 우산 없니? 같이 가자.”
두 아이는 사이좋게 우산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빗속을 걸어간다.
“비가 내리면 또롱 또롱 또로롱. 비가 내리면 참방 참방 참-방.”
아저씨는 왠지 귀가 솔깃하다. 아이들이 멀어졌는데도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아저씨도 덩달아 소리 내어 본다.
“비가 내리면 또롱 또롱 또로롱. 비가 내리면 참방 참방 참-방.”
그러고는 벤치에서 일어난다. “정말 그럴까?” 마침내 우산을 펼친다.
활짝! 아저씨의 가슴 속에 숨어 있던 동심이 작은 아이들의 동심을 만나 우산으로 피어났다.
…… 동심이 몹쓸 집착을 물리쳤다.

우산에 빗방울이 떨어지니, 과연 또롱 또롱 또로롱 소리가 난다.
“정말이네. 비가 내리니까, 또롱 또롱 또로롱이네.” 아저씨는 쑥쑥 앞으로 걸어간다.
발밑에서 참방 참방 참-방 소리가 난다. “정말이네. 비가 내리니까, 참방 참방 참-방이네.”
아저씨는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와 우산을 접으며 말한다.
“비에 푹 젖은 우산도 그런대로 괜찮군. 무엇보다 우산다워서 말이야.”
우산은 멋들어지게 비에 젖어 있고, 아저씨는 아주 만족스럽다.
집착을 버리니 비로소 본질이 보인다. 그 동안 몰랐던 세계가 열린다.

그렇다. 우산의 본질은 비를 가리는 것이다. 그래서 비에 젖는 것이며, 그게 우산다운 것이다.
그런데 집착이 본질을 망각케 하니, 아저씨는 오랫동안 우산을 우산 아니게 만들었다.
제 우산이 아무리 멋지고 특별해도 우산은 우산인데,
비를 가리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러므로 비에 젖는 운명을 거부할 수도 없는데.

어떤 집착이 ‘역사’라는 커다란 우산을 우산 아닌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인정을 저버리고 작은 아이들을 빗속으로 내몰려 한다.
‘국론통일’이건 ‘명예회복’이건 제 역사가 아무리 멋지고 특별해도, 그건 역사의 본질이 아니다.
‘유엔 세계 인권선언’을 기초한 정치가이자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말한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그것이 역사의 본질이다.
누가 됐든, 본질 아닌 것에 집착하여 역사를 독점하면 대화가 끊긴다.

다행히도 아저씨는 동심을 만나 집착에서 벗어났다.
우산은 본질을 되찾고, 아저씨는 즐거움을 얻었다.
어떤 ‘아저씨’들도 집착을 버리고, 본질이 선물하는 즐거움을 누리시라.
그러기 위해, 동심을 만나시라. 간절히 권한다. 정신 차리고 그림책이라도 좀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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