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연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팔랑팔랑>

 

햇빛 반짝 빛나는 날, 나비가 소풍을 나왔다. 꽃 무더기 흐드러진 벚나무 아래, 긴 나무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참 좋구나.” 나비는 가져온 도시락을 꺼낸다. 소풍엔 김밥이 제격이고, 김밥엔 역시 따뜻한 보리차.
얼마나 기다리던 봄, 소풍인가. 나비는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바람 살랑 부는 날, 아지도 산책을 나왔다. 책 한 권 들고서 늘상 찾던 벚나무 아래로,
그런데 낯선 이가 먼저 와 앉아 있다. ‘오늘은 누가 있네?’ 나비가 바구니를 치워 자리를 비워 주고,
보온병 뚜껑에 보리차를 따라 입을 축이면서 힐긋 아지를 훔쳐본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지는 들고 온 책을 펼치고 콧바람 흠흠대며 독서삼매경.

그때, 우연일까? 꽃잎 몇 장 팔랑팔랑 떨어지고 그 중 하나 나비 콧잔등에 내려앉는다.
옴찔옴찔, 킁킁! 나비는 아랫입술을 내밀고 후우~ 바람 불어 꽃잎을 날려 보내는데,
그 꽃잎 살랑살랑 날아가, 하필이면 이번엔 아지의 콧잔등에 내려앉는다.
옴찔옴찔, 킁킁! 아지도 후우우~

팔랑팔랑, 살랑살랑. 얄궂은 꽃잎이 마지막으로 살포시 내려앉은 곳은 나비의 김밥 위.
순간 둘은 당황스럽습다. 그 짧은 시간에, 나비와 아지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생각이 생겨나고 맴돌았을까?
어색한 정적을 먼저 걷어 낸 쪽은, 나비였다. “김밥 드실래요?” 혼자 먹는 게 미안해서였을까?
아지도 기다린 듯 대답합니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마침 배가 고팠던 것일까?

이런! 주고받은 두 마디에, 조용히 저마다의 나들이를 즐기는 듯하던 나비와 아지의 말보가 터졌다.
손짓을 섞어 가며 무슨 이야기꽃을 그리 피우는 걸까?
팔랑팔랑, 살랑살랑~ 꽃잎은 사방에 흩날리고, 바야흐로 봄이 왔다.

이 이야기는 꽃 피는 봄날의 인연 이야기다. 기다란 의자의 양끝에 앉아 어색하게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나비와 아지를 인연으로 이어 준 것은 우연히 떨어진 꽃잎. 그런데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불가의 연기설(緣起說)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에 저것이 생긴다.”는 말로,
세상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연이란 있을 수 없음을 일러준다. 그렇다.
겨울이 갔기에 봄이 왔고, 봄이 왔기에 꽃이 피었으며, 꽃이 피었기에 나비도 아지도 나들이를 나왔고,
그렇기에 둘 사이에 인연의 싹이 튼 것이다. 그러므로 나비와 아지의 인연은 우연이 아닌 필연인 듯싶다.
그런데 꽃잎은 왜 하필 그때 거기에 떨어진 것일까? 그건 분명 우연이 아닌가?

그 답을 찾는 데에 이 그림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작가는 나비와 아지의 인연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인연 이야기를 숨겨 놓았다. 그리하여 꽃잎이 왜 하필이면 그때 거기에 팔랑팔랑 떨어져
둘의 인연을 이어 준 것인지, 그 까닭과 사연을 들려주고 있다.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이며 어떻게 펼쳐지는지는,
그림책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세 알 수 있으니 밝히지 않겠다.

우리가 우연이라 알고 있는 것들이, 곰곰 생각해 보면 실은 필연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연은 ‘아직 모르고 있는 필연’이며, 필연은 ‘우연을 통해 실현되는 운명’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고 보면 모든 인연은 다 운명이요, 그래서 다 소중할 터이다.

그런데 그렇다 해서 모든 인연을,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저 운명으로 알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걸까?
나비와 아지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코끝을 오가던 꽃잎이 결국 나비의 김밥 위에 떨어졌을 때,
나비는 무심히 떼어내고 계속 혼자 먹을 수도, 민망하여 자리를 떠날 수도, 짜증 섞인 항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행동은 아지에게 도시락을 내밀며 “김밥 드실래요?” 권하는 것이었다.
아지 또한 그가 할 수 있는 여러 행동 중에 “아이구, 고맙습니다!” 감사히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그것은 분명 둘의 개성에서 나온 언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운명이란 결국 저마다의 마음씨와 의지와 행동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남녀노소 누구나, 벗이든 연인이든 동지든 이웃이든 인연을 바라고 있다면,
화창한 날 집에만 머물지 말고 공원이든 도서관이든 시장이든 어디든 나가보는 게 어떨까?
나가서 마주치는 누군가에게 선선한 마음을 전해 보는 건 어떨까? 꽃피는 봄날의, 나비와 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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