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 먹고 싶으면

If you want to eat watermelon

더운 여름날, 시원한 수박이 먹고 싶을 땐?

더운 여름날, 시원한 수박이 먹고 싶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수박을 사먹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 수박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요? 사람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저마다 제 손으로 만들어 쓰지 않습니다.
나누어 생산하고 바꾸어 쓰는, ‘분업’이라는 방법과 ‘화폐’라는 수단이 있으니까요.
분업과 화폐는 확실히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것들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거기에 얼마나 많은 수고와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잊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사물과 사람들을 귀하고 고맙게 여기기보다는,
그것들과 그이들을 얻고 부리는 목표와 수단에 집착하게 하지요.
그리하여 우리는 종종 일하는 사람과 수고하는 과정 없이,
수단만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가 쉽게 사먹는 수박을 얻기 위해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나아가 그것을 제대로 얻기 위해 어떤 마음과 태도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는지를 보여줍니다.
책 속의 농부는 이른 봄 쟁기질로 밭을 깨우고도 겨울이 완전히 물러가기를 기다렸다가,
살구꽃 필 무렵에야 구덩이를 파고 퇴비와 참흙을 켜켜이 채운 뒤 까만 수박씨 서너 개를 뿌립니다.
그러고는 땅속의 싹눈이 마르지 않게 날마다 촉촉이 물을 주지요.
이윽고 서너 개 싹이 나면 개중 실한 놈 하나만 남기고 두세 개를 솎아 냅니다.
그리고 남은 싹이 줄기를 뻗고 꽃을 내고 열매를 맺도록, 날마다 밭을 드나들며 고단한 노동을 감내합니다.
뿌리가 숨을 쉬도록 북을 돋우고, 뻗어가는 줄기가 움켜쥐라고 볏짚을 고루 깔아 주며,
줄기가 힘을 모으게 곁순을 질러 주고, 꽃가루받이하는 벌 나비 모여들도록
끊임없이 나는 잡풀과 자꾸 생겨나는 진딧물을 농약 대신 일일이 손으로 뽑고 훑어 줍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그저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땀만큼 마음도 쏟습니다.
씨 뿌리고 흙 덮어줄 때는 잘 자라라 잘 자라라 조용조용 읊조려 주고,
싹을 낼 적엔 날마다 물을 주며 정성을 쏟되
끝내는 수박 싹 제가 절로 난 줄 알도록 무심한 듯 모른 척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떡잎이 고개를 내밀면 아이처럼 기뻐해 주고,
싹을 솎아 낼 땐 안타까워하며 그런 만큼 남은 싹에 더욱 정성을 쏟아 줍니다.

그렇다고 마냥 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다가도 너무 지치거나 더위를 먹지 않도록 가끔 원두막에 올라
시원한 미숫가루 물도 마시고 낮잠도 한 숨 잘 줄 아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농부는 수박이 익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동안 고라니며 멧돼지며 동네 꼬맹이들이 설익은 몇 덩이를 축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농부는 그도 자연스런 과정이려니 생각하고 서운해하거나 성내지 않습니다.
조급해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 농부는 그 때를 기다립니다.
줄무늬 또렷해지고 덩굴손 마르고 꽃자리 우묵해지고, 통통 두드려 맑은 소리 날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그렇게 영글대로 영근 수박이 이윽고 몸뚱이를 뒤척인다 싶을 때,
농부는 성큼성큼 밭으로 들어가 그놈을 똑 따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수박을 맛볼 차례지요. 농부는 손을 크게 저어 사람들을 부릅니다.
“어이! 이리들 오소!”
수박 먹고 싶은 이는 그 누구든, 엊그제 다툰 사이도 지나가는 길손도 반가이 불러 둘러앉힙니다.
혼자만 먹을라치면 그 고된 나날들이 얼마나 보람되랴 싶은 게지요. 그 마음이 수박의 마음마저 열게 합니다.
칼도 닿기 전에 쩍! 제 몸을 열어 단물이 흐르는 붉은 속살을 아낌없이 내어주게 합니다.
땀과 정성 쏟아낸 한 시절을 고스란히 돌려주게 합니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모든 사람이 농부처럼 수박을 심고 가꾸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박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마음까지 쏟아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이 수박농사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때에 맞춰 수박을 길러야겠지요.
그리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책 속의 농부처럼 땀 흘리고 마음 쏟으며 정성껏 일할 줄 알고,
나누어 넉넉히 보람 키울 줄 알아야 할 겁니다.
그래야 나와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지고 더 즐거워질 테니까요.
수박농사 아닌 다른 일로 돈을 벌어 수박을 사먹는 사람이라도,
수박을 먹으며 그 달고 시원한 붉은 속살이 어떻게 차올랐는지,
거기에 누가 어떤 수고와 정성을 담았는지를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저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서로를 더 고마워하며 더 귀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요?
수단이 아니라 아름다운 과정을 위해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수박이 먹고 싶으면

김장성 글, 유리 그림 | 16500원


작가 소개 : 김장성
제 손으로 밥을 벌기 시작한 뒤로 줄곧 그림책을 쓰고 만들고 펴내고 연구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씨름》 《나무 하나에》 《민들레는 민들레》 《호랑이와 효자》 《가슴 뭉클한 옛날이야기》등 여러 그림책과 어린이책의 글을 썼으며, 《민들레는 민들레》로 2015년 볼로냐라가치상(논픽션 스페셜 멘션)을 받았습니다. 수고와 정성이 보람을 빚는 세상을 바라며 이 책의 글을 썼습니다.

작가 소개 : 유리
그림책 작가. 경기도 여주의 나지막한 숲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자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작가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작품으로 《돼지 이야기》 《대추 한 알》 《강아지똥 별》등이있으며, 《대추 한 알》로 2015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습니다. 느리지만 ‘날마다 꾸준히’의 힘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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