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성 글, 국립춘천박물관 감수|반양장 236쪽|195*247mm|책값 : 23000원
ISBN : 978-89-98751-78-4|펴낸 날 : 2020년 6월 15일

박물관에서 만나는 강원도 이야기는 이런 역사책입니다.

지루한 암기과목? 즐거운 상상놀이!

신라시대의 ‘총알배송 젓갈 택배’?

1975년, 월지(안압지)의 신라유물을 샅샅이 뒤졌을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목간 50여 개가 나왔습니다. 그중 하나에 쓰인 글귀가 “동궁 비서실로 급히 보내는 고성 젓갈 중상품 항아리”. 요즘으로 치면 ‘총알배송 젓갈 택배’지요. 그런데 뭐가 그리 급했기에 세자의 궁궐에서 그저 그런 품질의 젓갈을 총알배송 받았을까요?

이때 나온 재미난 유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술 마실 때 굴리며 노는 13면 주사위, ‘주령구’. 거기에 ‘원샷 하고 크게 웃기’, ‘팔 굽혀서 다 마시기’, ‘더러워도 버리지 않기’ 따위 벌칙이 적혀 있으니, 주령구와 젓갈항아리와 수시로 잔치가 벌어지던 월지 임해전이라는 단서들을 하나로 엮으면 이런 상상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신라의 왕자가 술자리에서 ‘복불복 액젓 마시기 게임’을 즐겼는데, 곧 열릴 잔치를
준비하던 비서실에서 액젓이 떨어진 걸 확인하고 젓갈로 유명한 강원도 고성의 수령에게
‘급하니까 아무 거나 빨리 보내’라는 전령을 띄워 중상품 한 항아리를 특송으로 받았다.

‘신라 말, 왕실과 중앙귀족들이 사치와 향락에 젖어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 되었다’는 국사 교과서의 기술에 이런 상상을 보탤 수 있다면, 역사는 지루한 암기과목이 아니라 즐거운 상상놀이로 되지 않을까요? 원본 사료를 뒤지고 뒤져 풀어낸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실들이, 역사의 여백을 채우는 즐거운 상상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옛날 그들이 살던 흔적? 오늘 우리를 이해하는 단서!

‘빗살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아무리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다 알고 있는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와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그런데 이것들이 대체 오늘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주먹도끼는 인류 최초의 ‘규격도구’. 표준적인 모습을 정해 놓고 그에 맞춰 계획적으로 만든 최초의 도구이지요. 또한 주먹도끼는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 만든’ 도구이기도 해요. 도구를 쓰는 동물은 사람 말고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획을 세워 만들고, 그 도구로 또 다른 무엇을 만드는 동물은 사람뿐. 그러니 주먹도끼는 사람이 다른 동물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임을 선언한 최초의 물건인 셈입니다.

그럼 빗살무늬토기는? 사실 신석기시대에는 여러 가지 토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빗살무늬토기. 그래서 신석기시대의 토기를 통틀어 ‘빗살무늬토기’라 부르지요. 그러니 ‘빗살무늬’보다는 ‘토기’가 중요한 것! ‘토기’는 사람이 만든 첫 번째 ‘신소재’예요. 자연 물질을 가공해 전혀 새로운 물질로 바꾸어 낸 것. 덕분에 인류는 먹는 시간과 장소를 확장하고, 이동이 부자유한 약자들도 집단에 품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므로 빗살무늬토기는 가장 기본적 생명활동인 먹는 행위를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할 것이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갖고 있음’을 선언한 대표적인 물건.

박물관 유리벽 너머 건조한 설명과 함께 전시된 유물들이 우리랑 무슨 상관있을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맥락과 의미를 짚어보면, 오늘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전망하는 흥미로운 단서로 살아납니다.

다 알고 있다고? 더 알아 보자고!

조선의 아이들은 무슨 숙제를 했을까?

그 유명한 김홍도의 <서당> 그림. 숙제를 안 했는지 혼나고 우는 아이와 난감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훈장님의 모습이 참 재미나지요. 그런데 서당 숙제는 대체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여기, 서당에서 내 준 숙제 알림장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대한제국 말인 1907년 (고종 44년) 4월 10일에 어느 서당 훈장님이 김정석 어린이에게 준 것.

다음 글귀를 외워 오시오.
《소학》의 ‘공작의 아내 한 씨’로 시작하는 곳부터 ‘드나드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로 끝나는 곳까지.
토씨를 달아 가며 소리 내어 읽을 것.

과제로 제시된 텍스트는, 선하고 바른 삶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학》 ‘외편(外篇)’ 가운데, 당나라 관리 유공작의 아내 한 씨에서부터 동진의 장수 도간에 이르기까지 7명의 행적을 쓴, ‘한자 740개로 이루어진 한문 글귀’예요. 요즘 어린이들에게 보여준 다음에 한번 물어볼까요? “조선시대 서당에 다니는 게 나을까, 요즘 학교에 다니는 게 나을까?”
서당에서 천자문, 소학, 명심보감 따위 한문책을 공부했다는 건 다들 알지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까지 알긴 어렵습니다. 대개의 역사책은 그런 건 안 알려주니까요. 그러나 구체적 실제를 모른 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은 참 앙상한 지식이기 쉽습니다.

지역의 역사? 모두의 역사!

강릉 빼고 양양, 원주 빼고 춘천?

알다시피 강원도의 ‘강원’이라는 이름은 강릉과 원주의 앞 글자를 딴 것입니다. 정3품 관리가 관할하던 두 큰 도시. 다른 도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강원도는 내내 강원도였을까요? 원양도, 강양도, 강춘도, 원춘도… 여러 번 바뀌었다 회복됐어요. 왜일까요?

1665년(현종6년), 강릉에서 존속살해사건이 일어났어요. 온 몸이 썩어들어가는 병에 걸린 백성 박귀남을 아내와 자식, 사위 들이 단지에 넣어 산에다 묻어 버린 것. 현종은 범죄가 일어난 강릉의 부사를 파직하고 고을의 등급을 현으로 강등시킨 뒤, 강릉의 ‘강’을 빼고 양양의 ‘양’을 넣어 ‘원양도’로 바꾸었어요. 도리를 중시하는 성리학의 나라답지요?

영조 때 원주가 빠지고 춘천이 들어가 ‘강춘도’가 된 일과, 정조 때 강릉이 빠지고 춘천이 들어가 ‘원춘도’가 된 일은 모두 역적모의 건. 그중에서도 정조 때의 일은 단지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사형당한 이택징이라는 이가 강릉 출신이라는 이유. 절대왕권국가답지요? 그런데 이택징은 20년 뒤 무죄로 밝혀져 명예를 회복했으니, 실은 당시에 극심했던 당파싸움에 억울하게 희생된 사례라 할 수 있을 듯.

이건 강원도의 사례지만 어디 강원도의 역사이기만 할까요? 전라도는 ‘전남도’, ‘광남도’가 된 적 있었고, 충청도도 ‘충공도’, ‘청공도’, ‘공홍도’, ‘홍충도’ 등으로 바뀐 적 있으며 그 까닭이 다 비슷하였으니, 한 지역의 역사와 온 나라의 역사가 엮이고 겹쳐 결국은 모두의 역사가 되는 것이지요.

질문하고 상상하는 즐거운 역사

시가 된 역사, <토기에 대한 상상>

국립춘천박물관 선사실에 멋진 토기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하나같이 아가리가 부드럽게 밖으로 벌어진 철기시대 토기들이 단연 눈에 띄지요. 이런 모양의 토기는 우리나라 중부지역에서 두로 출토되었는데, 특히 춘천 중도유적지에서 대량으로 나와 ‘중도식 토기’라 이름 붙었어요. 그런데 어째서 이 시기의 그릇들은 이런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아직 밝혀진 바는 없어요. 하지만, 그러므로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요? 다음은 이 책의 글쓴이가 시로 쓴 ‘토기에 대한 상상’.

춘천 중도에서 많이 나왔다 하여 / 중도식 토기라 불리는 철기시대 그릇은 / 항아리든 떡시루든 밥주발이든 / 꽃을 꽂았는지 술을 담았는지 알 수 없는 / 자그마한 단지든 / 대개 아가리가 / 나팔처럼 부드럽게 밖으로 벌어져 있는데

왜 그럴까, 언제부터 그리 빚었을까 / 박물관 유리벽 앞에서 한참 생각하다 / 퍼뜩, 이런 가설을 세워 본다

어느 날, 중늙은 토기장이가 / 뒤꼍에서 장을 뜨던 딸아이 무심히 지켜보다가 / 아얏! 하는 소릴 듣고 벌떡 뛰쳐가 보니 / 그 아이 고운 손끝에 앵두알 같은 핏방울 맺혔다더라 / 아가리가 조금 깨진 장항아리 그냥 두었더니 / 깨진 자리에 여린 손이 하마 긁혀 버린 것이었다더라

그때, 토기장이 아버지는 / 으흠으흠! 헛기침만 하고 말았지만, / 그날 밤 그릇을 빚는 공방에서 / 와장창 장항아리 박살내는 소리 들려나오고 / 밤새 물레 돌리는 소리도 흘러나왔다더라

이튿날 가마에 하루 종일 연기 오르고 / 이윽고 가마 문이 열렸을 때 / 얼굴이 벌게진 토기장이가 가마 속을 들여다보며 / 벙긋벙긋 바보처럼 웃고 있었는데, / 줄지어 선 그릇들도 한결같이 / 아가리를 부드럽게 밖으로 벌리고는 / 벙긋벙긋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더라

나는 이 가설이 증명할 수 없는 정설이라 믿는다 / 왜냐하면, / 중도를 품은 춘천 땅에 어여쁜 소녀가 살고 있는데 / 소녀에게 살뜰하고 다감한 아버지가 계시고, / 그 소녀 고운 손끝에 오래된 상처자국 하나 남아 있음을 / 내가 보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상상은 상상일 뿐 정설이 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역사책이 건조한 사실로만 채워질 까닭이 있을까요? 더구나 아이들을 역사 속으로 이끄는 책임에야.
독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보여주며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이 책은 국립춘천박물관과 그림책 전문 출판사 이야기꽃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글쓴이는 국문학을 전공한 그림책작가, ‘학문으로서 역사’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지요. 그렇기에 글쓴이는 이 책의 독자인 어린이•청소년과 같은 눈높이로 역사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궁금한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구체적인 원본자료와 현장을 찾아 확인했습니다. 그것들이 오늘의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맥락을 짚어내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정리하였지요. 그리고 그림책을 만들듯, 생생한 시각자료들과 함께 ‘보여주며 들려주는’ 방식으로 서술하는 데에, 꼬박 1년 6개월을 몰두했습니다. 이를 국립춘천박물관의 학예연구원들이 꼼꼼히 감수했습니다.

작가 소개

글쓴이 김장성
재미난 일을 의미 있게, 의미 있는 일을 재미나게 하고 싶은 글쟁이, 책쟁이입니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과 중도식 토기에 반해 이 책을 썼습니다. 쓰는 내내, 탐정놀이를 하는 듯 흥미로웠고 퍼즐 맞추기를 하는 듯 즐거웠습니다. 어린 시절의 비밀 장소를 아이와 함께 찾아가 손짓발짓하며 무용담을 들려주는 아빠처럼, 그 재미와 즐거움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싶습니다. 그 동안 《민들레는 민들레》 《수박이 먹고 싶으면》 《하늘에》 《겨울, 나무》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 《나무 하나에》 《씨름》 《새 보는 할배》 《사과》 《까치 아빠》 등의 그림책과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 《가슴 뭉클한 옛날이야기》 《어찌하여 그리 된 이야기》 등의 이야기책을 썼으며, 《민들레는 민들레》로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았습니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그림책 창작론’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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